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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육룡이 나르샤,두문동 방화사건과 1차왕자의 난

육룡이 나르샤 37회에선 이방원의 선죽교에서 정몽주 살해후 조선건국의 급물살을 타 이성계가 왕이 되고 과거까지 치르는데 이때 조선건국후 첫 과거때 유생들과 고려 폐망후 사직한 관료들이 시위를 한듯 과거장에 안나오게 된다.

이 때 모여든 선비들은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光德山) 서쪽에 있는 골짜기에 모여 살았다고 하는데 드라마상에는 두문동으로 나온다.

중국고사에 병과를 핑계 삼아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하여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었지만 태종이 이 고을을 두문동이라고 하였다.
역사상 두문동72현사건이 이라고 가옥에 불을 질러 고려의 충절을 표해 불이 났지만 그대로 불에 타 죽은 유생이 72명의 사건인데 역사는 태조가 지시했다고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아무래도 이방원의 캐릭터의 색깔과 정도전의 갈등을 더욱 심화 시껴 극적 긴장을 조성하여 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의 살해와 좀 더 극화 시키고자 하는 의도인것 같다.

다음편 38회가 어떻게 작가가 이끌고 갈것이며 정도전과의 이방원의 갈등을 어떻게 조명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