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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육룡이 나르샤,브로큰에로우 1차왕자의 난

38회에 세자책봉으로 이성계와 정도전은 방석을 지목한다.

육룡이 나르샤에 내용상 전지적

작가시점에 미리 상황을 알고 전개해서 결국은 이방원이가 태종으로 가는 과정의 스토리로 가는듯 하다.

옛 미군에서는 전장터에 적군이 아군보다 화력이나 전력상에 월등한 우위를 점할때
사령부은 브로크 에로우를 발령한다.우리말로 풀자면 진내폭격,
아군과 적군이 접전전 지역에 무차별 폭격은 감행하는 작전.
물론 아군의 피해를 감안하고 하는 작전이다.말그대로 브로큰 에로우 부러진화살처럼 상황이 기우려진 상황에 아군과 적군이 구별하기 힘든 혼돈속에 아군에게 기회가 브로큰 에로우발령 전 상황보다 많아 질수 있기때문이다.이처럼 육룡이 나르샤에서 무명의 무극 연향과 이방원의 대화를 보면 아군에 불리한 상황에서의 혼란을 가중시껴 기회를 만들자 라는식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아무래도 막내가 세자 책봉이 되면 정실부인의 아들들 방과,방간,방원들이

가만히 있질 않기때문.
그러나 역사 상에서는 장자인 방우가 세자책봉을 거부, 머리깍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정도전과 이성계 두번째부인 신덕왕후와 모의를 해서 방석을 세자에 앉힌다.신덕왕후는 당연히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을것이고 정도전입장이야 재상중심제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허수아비 왕이야 말로 적격이기때문에 두인물의 욕망이 합의 된것이다.

이때 역사는 정도전은 대군들의 힘을 없애기위해 대군들의 사병들을 없에는 정책을 편다.

이때 대군들의 불만이 최고조로 다다를 때 이방원이가 선두에 서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신덕왕후와 방석,정도전을 척살한다.당시 극박한 상황에 이방원의 처 민씨의 도움과 거사에 대한 다그침이 있었다고한다.1차왕자의 난에 동원된 사병은 40명,

정도전의 사병철폐정책으로 무기와 사병을 표본으로 감춰야 했던 상황에서 거서 직전에는 숨겨둔 무기가 모자라 창을 반을 잘자라서 사병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다극했다고 한다.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도전을 척살할 때 이방원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로 목숨을 구걸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역사는 승자의 것,이후 기록들은 태종이 된 이방원의 역사조작이 다분하다.
정도전도 나라를 새운 일대지재를 완성한 인물이고 생각은 다르지만 정몽주와 같이 강인한 지조가 있는 인물로 빌고 구걸할것은 아니라는 역사가들의 중론이다.

어째든 39회는 이방원의 거칠줄모르는 행보에 극적인 패도를 얼마나 보여줄지 기대된다.